전주 바람이 살짝 차가운 오후, 한옥마을 쪽에서 커피 향이 밀려오고, 내 카메라 롤에는 이미 상상 속 웨딩사진이 몇 장이나 저장되어 있었다. “오늘은 그냥 구경만!” 하고 들어갔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런 각오는 전주웨딩박람회 입구의 에코백과 스티커 미션 카드 앞에서 바로 무너졌다.

입장하자마자 동선 지도가 보였고, 나는 홀·스드메·예물·청첩장 순으로 스탬프를 모으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드레스 라인. 조명 아래에서 새틴이 매끈하게 빛나고, 맞은편 레이스 드레스는 비즈가 은은하게 반짝였다. 스태프가 “상체 라인이 예뻐서 A라인보다 머메이드가 더 잘 받으실 거예요”라고 말하는 순간, 내 뇌는 이미 피팅 예약 슬롯을 탐색 중. 옆 부스에서는 스튜디오 팀이 실제 원본 샘플을 펼쳐 보였는데, 후보정 전 사진부터 앨범 레이아웃까지 통으로 보여주니 감이 확 왔다. 장밋빛 조명에 기대지 않는 자연광 스냅 포트폴리오가 유독 좋았다.

웨딩홀 상담은 더 현실적이었다. 전주 시내 접근성, 부모님 동선, 주차, 식사 퀄리티, 그리고 무엇보다 날짜 선점. 인기 시간대는 역시나 빠르게 빠진다고 했다. 홀 투어 영상과 테이블 데코 실물을 보며, 같은 비용대에서도 분위기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었다. “계약은 오늘만!” 같은 압박은 거의 없었고, 대신 전주웨딩박람회 현장 예약 혜택 내용을 차분히 안내해줘서 부담이 덜했다. 나는 휴대폰에 미리 만들어둔 질문 리스트인 식대 인상률, 최소 보증인원, 연기 규정을 하나씩 체크하며 메모했다.

스냅·본식 팀 라인업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로케이션이 한옥마을·덕진공원·경기전으로 나뉘고, 계절별 추천 시간대도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특히 전통 한옥을 배경으로 한 모던 한복 스냅 샘플이 눈을 사로잡았다. 과하지 않은 색감, 살짝 번지는 그림자, 그리고 하객의 표정까지 살아 있는 컷. “우리 가족 사진까지 이렇게 담아드려요”라는 말에, 결혼식 당일의 소란스럽고도 따뜻한 장면들이 눈앞에서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예물·혼수존은 체력이 필요했다. 반짝이는 반지들이 한 줄로 누워 있고, 옆 부스에서는 식기 세트가 ‘신혼 2인 스타터’로 묶여 있었다. 브랜드마다 보증서, 애프터 서비스 범위가 달라서 사진으로만 결정하긴 어렵겠다고 판단. 다만 전주웨딩박람회에서는 패키지 비교가 한 공간에서 가능한 게 확실히 장점이다. 예단 견적표, 가전 세트 할인율, 배송 일정까지 한 번에 묻고 답할 수 있으니까.

중간중간 챙겨주는 견본 청첩장이 은근히 재미였다. 종이 질감부터 타이포, 봉투 라이닝까지 손끝에 감촉이 남는다. 미니멀 금박 카드도 예뻤지만, 전주 감성을 담은 수채화 일러스트 카드가 의외로 강력했다. “QR 청첩장과 세트로 구성하면 단가를 낮출 수 있다”는 팁은 바로 메모. 신랑 신부 캐릭터 스티커는 사소하지만 마음을 녹이는 보너스였다.

휴식 구역에서 받아든 작은 간식과 물 한 병, 그리고 에코백 속 샘플·쿠폰 묶음. 나는 간단히 숨을 고르고, 방금 받은 견적서들을 테이블 위에 펼쳤다. 같아 보이는 금액 뒤에 숨은 옵션 범위—피스 수, 촬영 시간, 보정 컷, 원본 제공—가 어떻게 다른지 눈으로 비교하니 머리가 맑아졌다. 박람회가 무섭다고 느끼는 이유가 ‘오늘 결정해야 할 것 같아서’인데, 사실 정답은 비교였다. 같은 예산으로 어디까지 가능한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챙길지 기준을 세우는 시간.

개인적으로 좋았던 포인트는 세 가지.

  1. 실물 중심 상담: 샘플북이 아니라 실제 앨범과 액자, 드레스 원단을 만져볼 수 있었다.

  2. 전주 로케이션 특화: 한옥과 근사하게 어울리는 동선 제안이 구체적이었다.

  3. 부모님 배려 가이드: 예식 시간·식사·주차에 대한 설명이 디테일했다. “신랑 신부만 좋은 결혼식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편한 결혼식”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전주웨딩박람회 인기 부스 같은 경우 대기 시간이 길었고, 특정 시간대에는 홀 상담이 몰려 소음이 꽤 컸다. 그래서 팁을 남기자면, 오픈 시간대에 입장해서 대기 긴 부스를 먼저 공략하고, 중간에 간단한 당 섭취로 체력을 유지하는 게 좋다. 그리고 계약은 집에 돌아와 하루 더 생각한 뒤 해도 늦지 않다. 최소한 환불·연기 규정은 계약서로 정확히 확인할 것.

해가 기울 무렵, 내 에코백은 종이 샘플과 미니 견적서, 그리고 작은 사은품들로 묵직해졌다. 발은 조금 아팠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결혼 준비가 막연한 숙제가 아니라, 하나씩 체크해 나갈 프로젝트가 된 기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주 골목의 불빛 사이로 오늘 찍은 메모를 다시 펼쳐봤다. “홀 후보 2곳, 스드메 패키지 A·B, 스냅은 내추럴톤 우선.” 체크박스 옆에 작게 써둔 글씨: 우리에게 맞는 결혼식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한 줄 요약.

  • 전주웨딩박람회는 ‘당장 계약’보다 ‘정확한 비교’를 하기에 최적의 장.

  • 한옥 로케이션·가족 동선을 고려한 상담이 강점.

  • 준비물은 질문 리스트·예산표·메모 앱, 그리고 편한 운동화.

돌아보니, 좋은 결혼식은 화려함이 아니라 선택의 확신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확신을 채우기에는, 오늘 같은 현장만큼 생생한 교과서가 또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