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냄새가 살짝 밴 가을 바람이 얼굴을 스치던 토요일, 해운대 쪽 카페에서 아아 한 잔 들이키고 급히 지하철에 올랐다. 가방 속에는 신랑 신부 체크리스트, 펜, 그리고 “오늘은 ‘가계약충’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 한 장. 웃긴 건 막상 부산웨딩박람회가 열리는 BEXCO 앞에 서니 다짐이고 뭐고 설렘부터 올라왔다는 거다. 축가 연습도 안 했는데 결혼 준비는 왜 이렇게 메인 OST처럼 심장을 두드리는지.

박람회 입구에서 QR 체크인하고 팔찌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드레스 라인. 부산웨딩박람회답게 지역 스튜디오와 드레스 샵이 쫙 깔려 있었는데, 각 부스마다 실제 원본 화질 샘플과 보정 전후 컷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게 마음에 들었다. 말로만 “내추럴”이 아니라, 햇빛 질감이나 헤어 볼륨이 어떻게 살아나는지 비교가 한눈에 되니 상담이 훨씬 빨라졌다.

스드메 패키지는 예상대로 가격대가 층층이. 기본 패키지부터 프리미엄까지, 스냅 촬영 컷 수·원본 제공 범위·드레스 교체 횟수·헤메 리허설 포함 여부가 다 달랐다. 가장 유용했던 건 “이 패키지로 실제 진행한 커플”의 타임라인을 아예 붙여놓은 부스였다. 촬영일, 피팅일, 액자·앨범 납품일까지 캘린더로 보여주니 일정 감이 확 잡혔다.

웨딩홀 상담은 생각보다 큰 수확. 해운대·수영·동래 라인별로 뷰 타입과 동선을 비교해주는데, 바다 보이는 뷰에 혹해서 가려다가, 하객 이동 동선과 주차 편의성을 체크하라는 멘트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특히 오후 예식이면 빛 방향 때문에 사진 색감이 달라진다는 팁 이건건 현장 프로들만 해줄 수 있는 말이라 메모장에 별표 다섯 개.

청첩장·영상·사회자·축가 같은 ‘세부 아이템’ 부스는 작은 보석 찾기 느낌이었다. 활자 폰트 샘플을 종이 질감별로 쥐여주는 곳이 있었는데, 같은 디자인이라도 종이만 바꿨더니 분위기가 완전 달라졌다. 영상 팀은 30초 하이라이트와 본식 다큐를 나란히 틀어 놓고, 장면 전환 속도와 음악 컷 편집을 비교하게 해주니 취향결정이 쉬워졌고.

신혼가전 부스는 솔직히 지름신 존. 그런데 실속 포인트는 사양보다 ‘설치 동선과 소음’이었다. 상담사가 “신혼집 구조를 대충 그려보세요” 하길래 현관부터 배선 위치를 그렸더니, 세탁기·건조기 적층이 가능한지, 빌트인 냉장고 깊이가 맞는지 바로 판별해줬다. 현장에서 결제까지 몰아가는 분위기보다 “가격 캡쳐하고 돌아가서 비교해보세요”라며 견적표를 메일로 보내준 게 더 신뢰 갔다.

좋았던 점은 비교가 한 자리에서 끝난다는 것. 부산 지역 업체가 많아 실제 촬영 스팟이나 웨딩홀 조명·대기실 크기 같은 ‘로컬 디테일’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도 있다면 부산웨딩박람회 인기 부스는 대기가 길어 동선이 꼬이기 쉬웠다는 것. 그래서 팁 하나—입장하자마자 ‘꼭 상담받을 3곳’을 미리 찍고, 나머지는 걷다가 끌리는 곳만 들르자. 체력은 한정판이다.

사전예약 혜택은 확실히 챙길 만했다. 입장 사은품이야 가볍지만, 상담 도장을 모으면 스냅 업그레이드나 추가 원본, 축의금 봉투·식권 디자인 무료 변경 같은 현실적인 혜택이 붙었다. 다만 ‘오늘 계약 시’라는 문구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는데, 나는 가계약으로만 마무리. 계약금, 환불 규정, 날짜 변경 수수료를 체크하고, 녹취 대신 요약서를 문자로 받으니 마음이 편했다.

예상 외로 재미있었던 건 한복 부스. 색 조합 보드가 계절감별로 정리돼 있었는데, 부산의 쨍한 하늘색과 바다색을 고려해 청록·담홍 조합을 추천해주더라. 사진 백그라운드가 푸른 계열일 때 얼굴 톤이 뜨지 않게 미세한 붉은기를 얹는다는 설명이 납득됐다. 피팅은 못 했지만 소매 라인과 깃 높이만으로도 실루엣을 가늠하는 법을 배워 돌아왔다.

돌아보면 부산웨딩박람회는 ‘정보 수집’보다 ‘결정의 맥’을 잡아준 자리였다. 무엇을 지금 정하고 무엇을 나중에 정할지, 예산을 어디에 몰고 어디서 줄일지, 우리 커플의 우선순위가 자연스럽게 솟아났다. 화려한 선택지 속에서 “우리다운 것”을 고르는 일이 결국 결혼 준비의 핵심이구나 싶었다.

퇴장할 때쯤, 손엔 브로슈어가 잔뜩 들렸지만 머릿속은 의외로 가벼웠다. 체크리스트 몇 줄이 사라지고, 대신 우리식 타임라인이 생겼으니까.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더 선선했다. 파도 소리를 배경음으로, 오늘 받은 견적들을 폰 메모장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작은 약속을 하나 더. 다음 주에는 두 곳만 재방문해서 최종 후보를 고르자고 오늘의 설렘이, 내일의 결정으로 이어지도록.

집에 와서 발을 푹 담그고 다시 노트를 펼쳤다. 드레스는 셀렉 A, 메이크업은 B, 스튜디오는 C로 1차 픽스. 웨딩홀은 이동 동선과 역 접근성을 기준으로 두 곳만 남겼다. 누군가에게 박람회는 ‘사은품 받는 날’일지 모르지만, 내겐 ‘우리 결혼식의 분위기를 발견한 날’이었다. 부산 바다처럼 조금은 짠맛도 있고, 햇살처럼 꽤 따뜻한, 그런 하루.

부산웨딩박람회는 우리 취향을 제대로 알게 해준 곳이었다. 과장되지 않게, 그러나 충분히 설레게. 이제 남은 일은 간단하다. 오늘 적어 둔 메모대로 한 걸음씩. 그리고 언젠가 본식 당일, 오늘의 이 설렘이 카메라 프레임 속에서 빛나길—그렇게 조용히, 또 단단히 바라본다.